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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5 Gran Torino : American Heritage 2

레뷰 프론티어 행사로 <그란 토리노> 시사회에 참가했다.

시사회 진행 상 좀 매끄럽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는데,

행사 당일 서너 군데의 주최측에서 시사회 표를 나눠주고 있었고, 시사회 대상 영화도 두 종류로 혼선을 빚고 있었지만,

레뷰에서는 어디에도 안내를 하고 있지 않아서 당황했다.

덕분에 일찍와서 잘못 줄 서 있던 사람들에게는 선착순 10명이라는 우산도 무색해졌다.

레뷰 스티커도 시인성도 좋고 예쁜 것을 갖고 있던데,
스티커만 붙여서 걸어두기만 했더라도 좋았을 듯 하다.

많은 시사회를 다녀본 것은 아니나,
시사회의 평균을 얘기하자면 돈 안내고 영화를 본다는 긴장감 없음으로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문자를 찍거나, 스낵을 소란스럽게 먹거나
부산히 들락거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확실히 상영이 끝나고 이번처럼 박수가 나왔던 적은 없었다.

박수 갈채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다지 찾기 어렵지는 않았던 평이한 상징들을 생각하며 나오는데,
어느 두 관객의 대화를 들어보니
영화의 스토리 텔링만 따라가는 일반적인 대중의 시각은
이 정도로 이해하겠구나 하는 우려가 들었다.
이 영화는 그러니까,
전체적으로는 괴팍한 노인의 마음을 열어가는 휴머니즘 드라마이고
스토리가 천천히 치달으며 다다른 총격전이 너무나 허망하게 끝나는데
갱들을 겨우 몇 년 잡아넣기 위해서 목숨을 희생한다는 인과가 김빠진다는, 구성 실격에 대한 대화였다.

미국 관객으로서는 그냥 당연히 알고 있는 미국에 대한 공감과 지식이 없는 우리들에게는
꽤나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랜 토리노>는 박스 오피스 1위, 흥행작, 휴머니즘, 이런 키워드들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American heritage에 대한 헌정이기 때문이다.

부언컨대, 미국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이 영화는,
우정을 나누고 소중함을 발견하게 된 이웃 친구를 괴롭히는 갱들에게 저항할 때
지난 전쟁에서의 살생의 짐으로, 비무장으로 희생하는 늙은이의 휴머니즘 얘기로 읽힐 수 밖에 없다.

화두는 삶과 죽음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늙은이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30~40년대에 태어나 2차 대전을 겪고 황혼에 접어든
미국의 good ol' days의 마지막 증인들, 점점 죽어가는 미국의 정신에 대한 old school 의 애착
앞으로 살아나가야 할 미국 정신에 대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바람이다.

월트 코왈스키는 옛날 미국인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전쟁을 겪은 veteran인 그는
이쪽은 짝수, 저쪽 편은 홀수 번지인
전형적인 street 혹은 avenue에
나란히 늘어선,
잔디로 뒤덮인 작은 마당과 뒤뜰, basement와 garage가 있는 목조건물에서 살고 있고
잔디관리에 소홀함이 없고 garage에 온갖 공구를 구비해놓고서는 집과 배관을 손수 고쳐 쓰고,
항상 맥주를 마시고,집에는 총을 두어 자신과 프로퍼티를 보호하고, 기독교의 문화가 전통의 가치를 이루는,
풋볼과 야구에 대한 묘사가 빠졌다 뿐이지,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민자들을 배척하고, 무뚝뚝하고 괴팍하게 행동하면서도, 미국의 상징인 포드에서 일했다는 그에게 있어서
손수 조립했다는 자동차, 그랜 토리노는 일생동안 쌓아오고 지켜온 American heritage의 정수 그 자체이다.
곧, 이 영화의 제목은 American heritage로 치환해도 그 의미에 다름이 없다.

한편, 영화 곳곳에서 현재의 미국에 대해서 풍자하는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다.
베이비 붐 세대는 일하느라 바빠 소통이 단절되어 필요할 때만 부모를 찾고, 그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
옛 미국 세대들은 옆집에서 만난 샤먼의 입을 빌어 묘사되듯, 존경받지 못하고 소외당하고 있으며
미국의 모든 콜센터를 접수해버린 인도인들에 대한 풍자로 병원에서 '코스키'를 외치는 인도 여인,
흑인 어투를 따라하며 'bro'라고 말하는 주체성이 없는 청년,
흑인, 아시안 등 이민족들은 서로에게 총겨눔을 하며 갈등을 일으키고
조용했던 마을은 이민족들이 이주해오면서
전통적인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는 점점 발 붙일 곳을 잃어간다.
이웃들이 와서 벌집(wasp)을 떼어내 줄 수 없냐고 묻는 장면은 나름의 코믹 코드였다.

월트 코왈스키와 그 이웃들은 갱들에게 시달리게 된다.
세계 대전을 겪으며 미국은 국제 질서의 경찰을 자처하고 나섰으나
피를 보는 미국의 방식으로, 그 결과 보복과 게릴라전이 돌아왔다.
월트는 이러한 미국의 갈등 해소 방법론에 대한 회의로
2차대전의 상징 M1 개런드 소총을 들지 않고, 빈 손으로 십자가 모양으로 최후를 맞는다.

월트 코왈스키는 바른 됨됨이를 지닌 타오에게 여러가지를 가르친다.
정원 일을 하는 것이 그들 부족에서는 여자의 일이라고 하는 타오이지만,
사실 그 시대를 살아온 미국인들에게 내 집 앞 잔디깎고 눈 치우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있었는가.
타오에게 공구를 쥐어주고, 남자답게 말하기를 가르치고,
용기를 가르치고, 직업을 알선해 사람 구실을 가르쳐준다.
이런 것들이 타오를 미국인의 가치를 전승하도록 동화시키는 과정임은
결국에는 그랜 토리노를 유산으로 남겨주는 것으로서 그 로드맵을 드러낸다.
곧, 타오야말로 American heritage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


표현 그대로 옮긴다며 들려주는 그의 유언에서는
자동차의 Top을 멕시칸처럼 뜯어내지도 말고,
백인 양아치처럼 바보같은 불꽃 그림 그리지도 말고,
아시안들처럼 큰 스포일러를 달아 그 차를 망측하게 뜯어 고치지만 않는다면
그 차는 네 것이라 말한다. 유산을 변치 않도록 보존하기를 부탁한다.
앞으로의 미국을 살아갈 세대들에게 부탁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메시지이다.

미국의 문화를 논하면서 melting pot과 salad bowl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모든 민족들이 서로 섞이면서도 각기의 개성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salad bowl보다는
여러 민족들을 미국의 가치 아래 하나로 잘 녹여내는 melting pot에서 녹아들어
미국의 유산과 가치를 계승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은은한 주제곡 이외에는 귀에 들어오는 사운드 트랙이 없었던만큼,
그 시대의 음악들이 적절한 곳에서 흘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마지막 출연 영화라며 몇 번 더 영화를 만들 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이제 역사에서 퇴역하는 그와 그 동년배들에게
값진 자축의 은성 무공 훈장과도 같은 헌정이 아닐까 한다.


Posted by in0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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